왕릉이야기

효 릉[인종]

불dutl 2012. 3. 6. 12:43

제12대  <인  종>  1515년~1545년,  호,   재위;1544년11월~1545년7월{8개월}

효릉[쌍릉]: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서 삼 릉}

<효 릉>=인종,인성왕후

인종;중종과 장경왕후 사이의 장남이다.

조선 역대 왕중 재위기간은 가장 짧았지만 지극한 효심과 너그러운 성품의 소유자 였다

아버지 중종이 병이나자 밤 낮으로 옆을 지키며 관과 띠를 풀지않고 음식도 먹지 않았다.

중종이 승하하자 며칠간을 물 한모금 입에 대지않고 다섯달 동안 계속 곡을 했다고 한다

기묘사화로 폐지 되었던 현량과를 부활하고 기묘사화때의 희생자 조광조등을 신원해 주는등 어진 정치를 행하려 했으나 병약하여 포부를 펴지 못한채 왕위에 오른지 9개월만에 이복 동생인 경원대군[명종]에게

전위 한다는 것과 죽은뒤 반드시 부모의 능 곁에 묻어주고 장사를 소박하게 치를것을 유교로 남기고 보령

31세의 나이로 원인 모를 병으로 경복궁의 청연루에서 세상을 떴다.

인종의 유언에 따라 부왕인 중종과 어머니 장경왕후의 능인 정릉 옆에 능을 조성 하고 인종의 효성을 나타내기 위해 능호를 효릉이라 했다.하지만 1562년[명종17]정릉이 문정왕후[중종의 계비]의 시기심으로 현재의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의 선릉으로 옮겨 갔고 장경왕후의 능은 희릉이라는 능호로 바뀌어 효릉 옆에 있다.태어난지 6일만에 생모 장경왕후가 죽고 시기심 많고 악독하고 사나운 계모 문정왕후의 손에 자라야 했던 인종은 문정왕후에 의해 동궁에 불을 지르는등 여러차례 죽임을 모면해야 했다.

그럼에도 인종은 효성이 부족함을 자책하고 문정왕후의 아들 경원대군[훗날명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철저한 금욕 생활로 인성왕후와의 슬하에 자녀를 두지 않았다고 전한다

 

 

 

 

 

 <인 성 왕 후> 1514년~1577년

본관은 반남이고 아버지는 금성대원군 박용이며 어머니는 의성김씨로 1514년[중종9]9월에 태어났다.

1524년[중종19] 박씨 나이 11세 되던해에 인종과 혼인하여 세자빈에 책봉 되었다

1544년11월 인종이 왕으로 즉위하고 왕비가 되었으며 이때 그녀의 나이 31세였다.인성왕후는 인종 사망후 32년간을 자녀 없이 홀로 살다가 1577년[선조10]11월 경복궁에서 64세로 승하하여 인종의 옆자리에 모셔졌다.존호는 공의 효순이며 전호는 효모이다

 

  인성왕후 능침

 

  인종능침,효릉 정자각